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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영화 ★ 게임/영화 관련

25시 (25th Hou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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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범죄,드라마 | 134분 | 개봉2003.08.22
감독스파이크 리
출연에드워드 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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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등급15세 관람가
해외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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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공식 홈페이지해외http://25thhour.movi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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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

 

기타 : 2003-08-22 개봉 / 134분 / 범죄,드라마 / 15세 관람가

이건 내가 군대있을때 나온 영화라 나온지 한참 뒤에 봤지만 진짜 연기 구성 내용 그외 스토리면에서 내 기준에선 나무랄때없을만큼 잘만들어진 영화고 전하는 메세지도 정말 강한거 같에.
또 은근히 내가 군대에 가기전 느낌을 어렴풋이 떠오르게 만들고. 첨엔 결말보고 약간은 황당했지만
그냥 단순히 저런식으로 끝넬게 아니라 싶어서 여러군대 뒤져봤는데 
 
 hwayli 이 사람이 제대로 보신거 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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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리뷰)

 

"25시"

 

 척박한 현실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뛰어난 리얼리즘영화인동시에, "진짜"와 부딪혀서 해결되지 않는 "난제"를 세상밖으로 끄집어내어, 최고의 해답지를 과감하게 그려내는, 몽환적인 영화 [25시]는 뉴욕의 "불안감"을 검은색으로 채색해낸다.
어두운 도시, 뉴욕에서 마약상으로 살아가는 몬티가 7년간의 수감생활을 눈앞에 두고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을 스파이크리는 몬티의 친구인 제이콥과 프랭크의 불안감과 함께 어울려내면서 그것을 집단으로 형성시키고 사회로 끌어내고 미국이라는 대륙위로 끄집어 낸다. 이제부터, 영화는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스파이크리의 [25시]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강한 의지를 가진 이들을 보여주며 이렇게 고난은 이겨내는 것이다 이 게으름뱅이들아! 라고 잘난척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황에 직면해있는, 그러나 이 상황을 어떤 방법으로 벗어나야 할는지 아무런 방법도 알지 못하는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영화일뿐이다.


그러므로 영화가 2시간넘게 쏟아내는 불평불만은 당신에게, 조금은 낯설고 지루할수도 있다. 존재하지 않는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헤메는 몬티를 스파이크리는 조금도 도와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즈음에 달하며, 당신은 점점! 문제를 바라보는 감독의 진중한 자세에 반하고 말 것이다.자, 이제 우리는 영화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영화를 다섯 번쯤 더 보고싶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몬티가 발견한 길위에서 죽어가던 개 도일이 몬티의 정성으로 완벽하게 건강을 되찾은 장면은 우리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지나쳐버린 영화의 중요한 "화두"이기 때문이다. "머피의 법칙"을 운운하며 무언가 아무것도 풀리지 않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몬티의 드렁크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인가? 살점이 헤지고 살이 부패되어 고깃덩이처럼 버려진 도일의 죽어가는 육체다. 고통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올 방법을 알지 못하는 몬티가 죽어가는 개 도일을 싣고 달리는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이영화를 가장 현명하게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이 될 것이다. 도일의 헤진 살점위에 새살이 올라붙고 부패한 몸뚱이위에 상처가 아물었던 것 도일의 "관심"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희망없는 깊은 골짜기안에 버려진 , 누구의 탓도 할수 없는 완전한 자신의 탓으로 마약상이 된 , 방탕했던 과거에 대해 반성조차, 뉘우침조차 할수 없는 몬티가 죽어가는 개 도일의 육체를 살려냈다는 것은 , 영화가 말하는 첫 번째 "가능성" 이며 현재 부패해가고 있는 몬티의 썪은 영혼을 살릴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 중요한 첫 번째 화두는 타인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개인의 영역을 과감하게 침투해들어간다. (나는 이런식의 이야기전개가 너무나 좋다.) 어릴때부터 늘 함께였던 친구 프랭크(증권중개인이다.)와 제이콥(고등학교 영어교사이다.)가 식당에서 나누는 대화장면은 그 결정적증거이다. 여자들이 자신을 거부한다고 생각하는 제이콥이 자괴감에 빠지자 그 이유에대해서 잔혹할정도로 사실적인 해답을 던져주는 프랭크는 자신이 "제이콥의 친구"이기 때문이 이러한 이야기들을 해줄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제이콥을 싫어하는 이유는 , 제이콥이 돈이 없기 때문이며(프랭크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서 부모님의 돈은 절대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진정한 독설!) 제이콥에게서 입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저주에 가까운 악담을 퍼붓는다. 그러나 이러한 프랭크의 독설은 "상처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그러니까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사실을 말하는데 왜 무언가를 고려해야 하는가? 고려한후에 우리는 무언가를 덧붙이고 또 은폐한다.) 제이콥의 "첫 번째 사실"인셈이다. 몬티와 프랭크와 제이콥이 함께 간 나이트클럽에서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제이콥이 , 자신들을 따라온 자신의 제자 매리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은 끔찍하지만 상당히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그것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그동안 누군가에게 단한번도 표현해보지 못한 제이콥의 "욕망"이며 영어교사 제이콥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몬티의 극단의 상황을 들여다보던 카메라가 제이콥과 프랭크를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서 스파이크리는 이영화가 누군가의 영화처럼 "윤리적 가치에 순종적으로 복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따위가 아님을 관객에게 경고한다.


자,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며, 무엇 때문에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그 원죄의 대상에 대한 본격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겠다고 말이다.
영화의 백미인 -몬티가 거울앞에 서서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쏟아붓는 욕설은 - 미국이라는 대륙위에 이주해온 소수인종들을 비웃고 자신의 옆에서 기거(?)하는 여인 내추럴을 욕하고 도시를 불태워버리라고 저주한다. 누구나 옳다고 이야기 하는 윤리적가치따위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질 않았느냐고 모두를 저주하고 역겨운 타인들의 욕망을 비난한다. 그러니까 이순간에도 몬티는 자신의 탓만으로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되었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반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들먹거리고 테러를 일으켰던 오사마빈 라덴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외치고 미국이라는 대륙으로 이주해오고 싶어 안달난 소수인종들이 미국에 와서 생존해나가는 방식에 대해서 역겹다고 오히려 토악질을 해낸다. 스파이크리의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그건 지독한 사실주의 영화가 관객을 휘감는 카타르시스와 매우 닮아있다.)몇분에 걸친 욕설을 잡아내는 카메라가 미치도록 매혹적인 이유는 [과장하지 않았음]에 있다.


한국인을 비웃는 욕설을 잡아내는 순간에마저도 분노가 치밀지 않는 이유는 스파이크리의 독설이 음침한 사회의 한 단면만을 들어내 확장시키려는 한작가의 개인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이해할수 없는 "관념"따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9.11테러가 미국이라는 대륙위에 던져준 극도의 불안감과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는 하루하루에 거는 순간의 안도감에 마치 전부를 걸것처럼 변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는 기대이상의 설득력을 갖는다.영화는 시작처럼, 몬티를 구해내려고 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수밖에 7년간의 옥살이를 담담하게 견뎌내는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얼마나 순응적이냐면, 멀쩡하고 매끈한 외모로 감옥에 들어갔다가는 몰매의 표적이 될것이라며 몬티는 친구들에게 매질을 해달라고 애원까지 한다! 상처를 어루만지라며 건네준 내추럴의 얼음을 바닥에 쏟아버리는 몬티의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은 아무런 해답도 희망도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음을 보여준다. 이토록 아무런 해답을 던져주지 않고 잔인할만큼 묵묵히, 몬티를 바라보기만 했던 영화는 우리들의 모든 상상을 배반하는 엄청난 반전을 보여준다. (나는 이 반전을 이야기 해야만 하겠다.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다!)

 

아버지는 아들을 감옥에 데려다주길 간절히 원하지만 아들은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다투던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함께 차에 오른다. 아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참혹하게 친구들에게 얻어맞은 몬티의 상처와 묵묵히 운전을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버지의 표정 그리고 두사람에게 살며시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살의 전경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제 희망은 없으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아도 되며 방법을 연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영화는 이제 기막힌 엔딩을 보여주기 시작한다!아.......아버지의 차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는 차를 멈추지 않는다. 주름으로 뒤덮인 노년의 아버지는 7년간 머물러 있을 감옥따위에 들어가지 말고 저멀리 갈수 있는한 가장 먼곳으로.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25시를 향해 열심히 달리라고 말한다.

 

"누구나 죽기전에 사막을 볼필요가 있어.
아무도 없지. 신이 가까이 느껴지지"

 

나는 이대사 한마디만으로도, 내가 이영화로부터 얻을수 있는 모든것 아니 그이상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서쪽으로 끝없이 달려 작은 마을을 만날때까지 달려서 술집이 나타나면 술이나 마시자고 말하는 아버지의 어투는 이제까지 감독이 한한컷의 여백을 남기지 않았던 영화의 리얼리즘을 박차고 일어서는 저력을 발휘한다. 성조기를 달고 달리는 차안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미 저세상으로 간 자신의 부인과 아들과 자신이 반드시 천국에서 만날것이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미 스파이크리는 이세상에서 건질만한 가능성을 이순간에 모조리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가상의 설정을 반드시 실제처럼 비쥬얼로 잡아내는 카메라는 다시 원점의 차안으로 되돌아 오지만,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보았고 상상했고 느꼈고 들은 후이기에 어떠한 남은 분노와 울음과 미련도 느낄수 없다. 이미 스파이크리는 모든 것을 해냈고 모든 것을 완성해보았기 때문이다.

 

지옥같은 현실을 비웃어주는 [25시]의 달변도 기가막히지만, 지옥같은 현실을 딛고 일어서지 않고 아예그모든것들을 (무시하며) 뛰어넘어버리는 희열과 감동은 글로 표현하기엔 아득하게 느껴질정도로 엄청나다. 스파이크리의 독설을 빛내주는 에드워드노튼의 연기는 [American History X]에서 보여주었던 기적같은 연기의 또다른 버전이며, 개인적으로 매우좋아하는 배우 필립 셰이무어 호프만의 강박증에 시달리는 제이콥의 연기는 치명적인 매력점에 달했다. 스파이크리의 영화를 빛내주는 음악과 촬영에 대한 이야기는 도무지 언급을 건너뛸수가 없다. <아모레스 페로스><프리다><8마일>의 촬영을 맡았던 Rodrigo Prieto 의 화면이 없었다면 우리는, 에드워드노튼의 몇분에 걸친 지독한 독설과 엔딩이 주는 웅장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지 못했을것이며, 그의 전작들에서 함께 작업해온 Terence Blanchard 의 음악이 주는 기묘한 분노와 슬픔을 들을수 없었을것이다.(나는 분노와 슬픔이 들릴수 있다는 사실에 놀랬다. 특히 인물들을 1:1로 끌어내며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Rodrigo Prieto 의 그로테스크한 화면과 함께 울려퍼지는 스크래칭사운드는 이영화를 발견하는 현명한 방법중의 하나가 될것이다!)

[25시]는 사실을 목격하고 싶은 당신과, 사실을 벗어나고 싶은 당신과, 이상을꿈꾸고 싶은 당신, 모두에게 기대이상의 만족감을 줄, 완성도 높은 스파이크리의 신작이다. 단지 "목격"만으로 그치지 않은 스파이크리의 과감한 엔딩이 주는 파장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